경주김씨 충암공파에 대하여.. 안녕하세요?전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 분파인 충암공파 후손으로만 알고 살고 있습니다.어려서 충암자손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 분파인 충암공파
20세 증조 基〇
21세 조부 〇九
22세 부친 洪〇
23세 저는 〇植
24세 자녀 應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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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의 연혁]
경주(慶州)는 경상북도(慶尙北道) 남동부(南東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기원전 57년 이 곳에 6촌(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古代國家)를 형성하고 국호(國號)를 서라벌(徐羅伐)· 사로(斯盧)· 사라(斯羅)라 하고 수도(首都)를 금성(金城)이라 하여 국명(國名)을 동일시 하였다. 서기 65년(탈해왕9) 시림(始林)에서 김씨(金氏)의 시조(始祖) 김알지(金閼智)가 탄생하여 국호(國號)를 계림(鷄林)으로 고쳐 삼았다가 307년(기림왕10)에 신라(新羅)로 하였으며 935년(태조18)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이 등극한후 처음으로 경주(慶州)라는 명칭이 생겼다.
987년(성종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1008년(목종11) 별칭(別稱)으로 낙랑군(樂浪郡)이라 하다가 1030년(현종21) 삼경의 제도가 실시되자 동경(東京)을 설치하였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계림부(鷄林府)로 개칭하여 지방제도의 개편 통치지역의 변동 등으로 명칭의 변화가 많았으나 영남지방(嶺南地方)의 행정중심지로서의 지위에는 변동이 없다가 1413년(태종13)에 와서 경주부(慶州府)로 개칭하였다.
[가문의 유래]
우리나라 성씨(姓氏)중에서도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일컬어진 경주김씨(慶州金氏)는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전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 1 신라본기(新羅本記)에 김알지(金閼智)의 탄생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서기 65년(탈해왕9) 3월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에서 닭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는데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보고하자 왕은 사람을 보내어 금궤(金櫃)를 가져온 후 뚜껑을 열어보니 작은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탈해왕(脫解王)은 기뻐하여 "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보내 준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하며 거두어 기르니 아이는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姓)을 김(金)으로 하사(下賜)하였으며 시림(始林)을 계림(鷄林)으로 고쳐 나라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이렇게 웅기(雄起)한 김씨(金氏)는 김알지(金閼智)의 7세손 미추(味鄒)가 왕위(王位)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 : 알지의 28세손)까지 38명의 왕을 배출하여 587년 동안 신라(新羅)를 지배해 오면서 왕족(王族)의 지위를 지켰으며 경주(慶州)를 비롯한 600여 관향(貫鄕)으로 분적(分籍)되었다. 경주김씨(慶州金氏)는 알지계통(閼智系統)의 김씨(金氏)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혈족으로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인 영분공(永芬公) 명종(鳴鐘)과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은열(殷說)을 일세조(一世祖)로 계대(系代)하는 계통(系統)이 대표적이며 상계(上系)는 미상(未詳)이나 경순왕의 후예로 전하는 인관(仁琯 태사공파), 순웅(順雄 : 대장군공파)을 일세조(一世祖)로 하는 계통 등 크게 5파로 갈라져 후대로 내려오면서 10여 개의 지파(支派)가 생겨났다. 영분공파조(永芬公派祖)인 명종(鳴鐘)은 경순왕(敬順王)이 손국(遜國)한 후 고려조(高麗朝)에서 경주군(慶州君)에 봉해졌다.
그의 8세손 의진(義珍)은 유학(儒學)의 종주(宗主)로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했고 12세손 인경(仁鏡)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고려의 명신(名臣)으로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올라 시(詩)와 글씨로 명성을 떨쳤다. 대안군파조(大安君派祖)인 은열(殷說)은 공부시랑(工部侍郞)을 거쳐 대안군(大安君)에 봉군되고 그의 후손들이 여러 관향(貫鄕)으로 분적되었으며 판도판서공파조(版圖判書公派祖) 장유(將有)는 고려말(高麗末)에 정국(政局)이 혼란하자 충청도(忠淸道) 보은(報恩) 땅에 은거(隱居)하여 그곳에서 일생(一生)을 마쳤다. 한편 태사공파조(太師公派祖) 인관(仁琯)은 고려 예종(睿宗) 때 조산대부(朝散大夫)로 위위시경(衛尉寺卿)을 지내고 검교태자태사(檢校太子太師)에 올랐으며 대장군파조(大將軍派祖) 순웅(順雄)은 고려초에 상장군(上將軍)을 거쳐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였다.
그 외 병판공파조(兵判公派祖) 덕재(德載)는 대안군(大安君) 은열(殷說)의 12세손으로 조선(朝鮮) 창업에 공(功)을 세워 보좌공신(補佐功臣)에 책록되고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한 후 함경도(咸鏡道) 정평(定平)으로 은거(隱居)하였다. 장사랑공파조(壯士郞公派祖) 존일(存一)은 대안군(大安君) 은열의 16세손으로 고려말에 장사랑(將士郞)에 올랐다. 조선창업(朝鮮創業)에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좌명개국공신(佐命開國功臣)에 녹훈된 균(稛)은 숭록대부(崇祿大夫)로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을 지내고 계림군(鷄林君)에 봉군되어 계림군파(鷄林君派)의 일문(一門)을 이루었다. 이렇게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가문(家門)의 성세(盛勢)를 지켜온 경주김씨(慶州金氏)는 역사(歷史)의 흐름 속에서 훌륭한 인재(人才)들을 대거 배출시켜 신라(新羅)와 근대(近代)를 잇는 역사적인 사건 속에서 경주김씨(慶州金氏)들의 입김이 닿지 않은 일들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가문(家門)의 기백(氣魄)을 지킨 대표적인 인맥(人脈)을 살펴보면 영분공 명종(鳴鐘)의 6세손 예겸(禮謙)이 고려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내중령(內中令)을 지냈고 예겸의 손자(孫子) 의진(義珍)은 고려 사학(私學) 12공도(公徒)의 하나인 양신공도(良愼公徒)를 육성하였으며 문종조(文宗朝)에는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지공거(知貢擧)를 겸하여 인재등용에 공헌했다. 의진(義珍)의 증손(曾孫) 영고(永固)는 무신의 난을 일으킨 정중부(鄭仲夫)와 이의방(李義方)을 제거하려 했던 인물이며 영고(永固)의 아들 인경(仁鏡)은 문무겸재(文武兼才)의 현신(賢臣)으로 고종(高宗) 때 조충(趙沖)과 함께 강동성(江東城)에서 거란군 평정에 공(功)을 세우고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으며 시문(詩文)과 예서(隸書)로 명망이 높았다.
대안군(大安君)은 은열(殷說)의 8세손 봉모(鳳毛)는 외국어(外國語)에 능하여 사신이 오면 관반사(館伴使 : 외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임시로 임명한 정3품 벼슬)로 천거되었으며 나라의 큰 일에는 항상 전례(典禮)의 일을 맡아보았다. 봉모의 아들 태서(台瑞)는 고종(高宗)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특히 그의 아들 약선(若先 : 공부시랑)· 기손(起孫 : 평장사)· 경손(慶孫 : 추밀원 부사) 3형제가 유명했다. 판도판서(版圖判書) 장유(將有)의 후손중 정랑(正郞) 효정(孝貞)의 아들인 충암 정(淨)이 조선(朝鮮) 중종(中宗) 때의 명신(名臣)으로 유명하다. 그는 정암 조광조(趙光祖)와 더불어 중종조(中宗朝)에 지치주의(至治主義)의 실현을 위하여 혁신정치를 시도하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서른 여섯 살의 아까운 나이에 졸하였다.
태사공(太師公) 인관(仁琯)의 9세손 상촌공 자수(自粹)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文科)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망국의 한(恨)을 안고 안동(安東)에 은거(隱居)하였다. 이성계(李成桂)가 왕위(王位)에 올라 이전에 친분이 있었던 그를 대사헌(大司憲)에 등용하려 했으나 대꾸도 않고 누워만 있었다고 하며 뒤에 태종(太宗)이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제수(除授)하고 그를 부르자 그는 조용히 일어나 사당(祠堂)에 가서 엎드려 영결(永訣)을 하고 아들 근(根)에게 흉구(凶具 : 장례 때 쓰는 기구)를 들고 뒤따라 오라면서 길을 떠나 광주(廣州) 땅의 추령(秋嶺 : 정몽주의 묘소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 아들에게 이르기를 "두 성(姓)의 임금을 섬길 수 없으니 이 곳에서 내가 죽는다. 너는 이 근방에 나를 매장하되 절대로 비(碑)를 세우지 말고 초목과 함께 썩게 하라" 하며 절명사(絶命詞) 두 구절을 지었는데 <내 평생토록 충성하고 효도하는 뜻을 오늘에 와서 그 누가 알리 있으리요> 하고 약을 마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참찬(參贊) 이주(頣柱)의 손자인 정희(正喜)는 학문(學問)에 있어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장하였고 서예(書藝)에서는 독특한 추사체(秋史體)를 대성시켜 특히 예서(隸書)와 행서(行書)에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였다. 그 밖의 인물로는 호장(戶長) 위영(魏英)의 증손(曾孫) 부필(富弼)· 부일(富佾 :수태위를 역임)· 부식(富軾)· 부의(富儀 : 지추밀원사를 역임)가 유명했다.
고려 문종(文宗)과 의종대(毅宗代)에 걸쳐 문무(文武)를 겸한 명신(名臣)으로 유명한 부식(富軾)은 인종(仁宗)이 즉위하자 왕실외척임을 빙자하여 권세를 쥐고 군신의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일삼던 이자겸(李資謙)의 방자함을 충고하여 이를 시정하게 하였고 42년간 벼슬에 있으면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1145년(인종 23) 왕명(王命)을 받들어 우리나라 최초의 정사(正史)인 「삼국사기(三國史記)」 50권을 완성하여 바치는 등 이름난 문장가(文章家)로 송(宋)나라에까지 명성을 떨쳤다.
예조판서(禮曹判書) 정집(鼎集)의 아들 창희(昌熙)는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을 거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에 올랐으며 철희(喆熙)는 황주목사(黃州牧使)로 재직중 1885년(고종 22) 황해도(黃海道) 토산(兎山)에서 일어난 민란(民亂)을 진압하여 승녕부종장(承寧府從長)을 지낸 춘희(春熙)와 자산으로 도서관(圖書館)을 설립한 인정(仁貞), 중국 원세개(袁世凱 : 중화민국의 초대 대통령)의 옥새를 새겼던 서예고문(書藝顧問) 태석(台錫), 아악부원양성소(雅樂部員養成所)를 개설한 영제(寧濟), 청성곡(淸聲曲)의 명수 계선(桂善) 등과 함께 명문(名門)의 전통(傳統)을 이었으며 용원(庸源)과 도태(道泰)는 조국의 자유수호와 광복을 위하여 몸바쳐 헌신하였으므로 신라왕성(新羅王姓)의 가통(家統)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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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토박이 성씨 김 이 박 최의 유래
https://kin.naver.com/qna/detail.naver?d1id=3&dirId=31506&docId=444154019&page=1#answer2
한국 전래 성씨 대부분이
한국인의 조상인 동이족 강석년과 강태공의 왕족에서 나온 성씨입니다
강석년의 왕족에서 나온 성씨 1000개 이상
강태공의 왕족에서 나온 성씨 130개 이상
삼황오제가 강석년의 혈족이고 한국=단군. 중국 =헌원. 월남=웅왕. 민족의 시조가 강석년의 후손에서 나온 사람임
임사 = 제유유망 소전의 어머니
부보 = 황제헌원의 어머니이고 임사와 부보는 유소씨의 딸로 언니와 동생.
임사와 부보는 자매로 제양후토 소전의 비.
제유유망 소전과 황제헌원은 이복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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